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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생활의 지혜

새로운 기술을 학습시 거치는 세 가지 단계

나모찾기 2020. 8. 12. 15:43

아래 글은 바이올린 카페에 올린 글인데 꼭 바이올린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적용이 가능한 사항이라 블로그에도 적었습니다.


 

최근 읽은 책들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바친기 회원님들과 공유해봅니다. (내용이 길어서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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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가끔 카페에 보면 바이올린 하는 것은 도(道)를 닦는 것 같다는 표현을 종종 봅니다.

'-도'로 끝나는 무예들, 가령 태권도, 유도, 검도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종목의 유사점은 오랫동안 수련을 통해 어떤 지향하고자 하는 바로 나아가는 운동들입니다.

악기도 어떻게 보면 음악이라는 지향점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단련을 하는 과정을 볼 때 이런 수련의 과정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파리(守破離)

일본의 에도시대(江戶時代) 중기 이후에는 죽도검술이나 무술의 자유연습의 발명은 살상을 하지 않고도 자유로운 기술을 연구해서 힘을 객관화하고 스스로 반성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습의 한 수단일 뿐이지 무도수행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가타(形)에 있고 이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수(守),파(破),리(離)의 3단계는 일본무도의 수련체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세가지 단계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守(수) : "protect", "obey" 규칙을 충실히 지킴

破(파) : "detach", "digress" 그것을 깨뜨리고 자기만의 방식을 찾음

離(리) : "leave", "separate" 규칙이나 형에서 자유러워짐

富木謙治, 1992

 

 

세 가지 단계(three levels of listening)

이런 일본의 이런 수련과정을 청자(listener) 관점으로 애리스터 코어번(Alistair Cockburn)라는 사람은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세 사지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하는 수준(following)

분리 수준(detaching)

거침없는 수준(fluent)

Alistair Cockburn, “Agile Software Development”, Addison-Wesley Professional(2001)

바이올린

바이올린도 비슷한 단계를 겪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하는 수준

처음 바이올린을 배울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절차를 배웁니다. 보통은 가르치는 선생님이 알려주는 것이 마치 절대 진리 같고 다른 방법은 틀린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적합한 열 가지의 절차가 있더라도 모든 절차를 한번에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단 한 가지 절차를 학습하고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어찌보면 효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학습자에게 중요한 것은 절차를 모방했을 때 얻어지는 성공의 달콤함이고, 학습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주어진 절차를 따르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안정감입니다.

 

분리 수준

이 단계는 절차의 한계를 배우는 수준입니다.

오직 단 하나의 절차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양한 절차를 학습하고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이루어집니다. 예컨데, 활쓰기에도 러시안 그립도 있고 벨지안 그립도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동일한 음이지만 다른 현에서 긋는 게 뭔지도 알게 되는 그러한 것들 입니다.

여러 절차를 배우게 되면 어떤 절차가 어떤 상황에 적절하고 어떤 상황에는 적절하지 않은지 알게됩니다.

이 단계를 거친 학습자들은 모든 경우에 올바른 절차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각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절차를 적용할 수 있는 판단력과 유연함을 익히게 됩니다.

 

거침없는 수준

이 단계에 도달하면 절차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연주가들에 보면 거장 혹은 대가라고 불리는 분들이 여기에 속하겠네요.

가끔 어떤 방법에 대해 논박을 할때 "누구누구는 그런 것 다 떠나 이렇게 하는데도 잘만 연주한다"고 예외 케이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 이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즉시 적절한 해법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신만의 방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특정한 절차나 방법을 따르는지 여부를 크게 개의치 않고 단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만의 절차와 방법을 적용하며, 과거에 익혔던 모든 절차를 트레이드오프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절차를 정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즈키는 레벨일까?

가끔 카페에 보면 스즈키라는 많이 사용하는 교재로 실력을 척도로 사용하는 글들을 보게 됩니다.

 

"스즈키 5권을 하는데 초보가 맞나요? 피아노로 치면 어느정도에 해당할까요?"

"여러분들은 스즈키 6권까지 마치는데 어느 정도 걸렸나요?"

"보통 스즈키 몇 권까지 하시나요?"

 

아마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가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ABRSM (Associated Board of the Royal Schools of Music) 레벨 같은게 있잖아요?" 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Grade는 일종의 토익시험의 점수 같은 레퍼런스를 위한 것에 목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패러다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으로 인해 전 세계가 꽁꽁 얼어 붙어 있던 1940년대 미국의 학자들은 과학을 일종의 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장으로 바라봤다고 합니다. 이런 기류 속에서 당시 하버드대 총장으로 부임하고 있던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는 시민들이 과학지식을 직접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인문계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사를 교육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이때 코넌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하버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던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입니다. 코넌트는 과학사 교과목의 담당 조교로 쿤을 추천했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과학사와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UC 버클리(헨리가 휴학 중인 동부 보스턴에 있는 음악대학과는 다른 학교입니다.)로 자리를 옮겨 과학사 강의를 하게 된 쿤은 그동안 과학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정리해서 내놓습니다. 이것이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라고 내놓은 책입니다.

 

이제는 일반인들의 사람도 많이 사용되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이 책에서 제안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공유한 세가지 단계의 개념은 이미 경험적으로 느끼신 분도 있을 것 같고, 들어서 알았을 수도 있고 처음 들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개념의 각 단계는 어떻게 보면 각기 다른 패러다임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수'의 단계에서는 '파'를 보지 못하고, '파'의 단계에서는 '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 8월 10일에 어떤 분이 카페에 "바이올리니스트분들도 공인이죠?"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사실 이 명제는 정답이 없는 것에 가깝기에 저는 "공인일 수도 있고 공인이 아닐수도 있다"라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는지 "애매모호한 댓글은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댓글을 남기고 글자체를 지우셨습니다.

각각의 입장이 주장하는 바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황희정승의 '네말도 맞고 네말도 맞다'식의 답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섯 색깔 모자

지금은 절판이 되었는데 에드워드 드 보너의 '생각이 솔솔 여섯 색깔 모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섯 색깔의 모자는 하양, 빨강, 검정, 노랑, 초록, 파랑으로 각각의 모자들은 하나의 관점을 상징을 나타냅니다.

육색 사고 모자 활동(Six color thinking hats)라는 활동이 나오는데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형성을 위함이 목적입니다. 만약 원래 자신이 초록색모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모자를 쓰면서 일부러 다른 관점을 하는 훈련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육색 사고 모자 활동(Six color thinking hats)

이리 저리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전공자던 취미생이던 바이올린 하시면서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데 '수'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여유도 가지면서 재미있게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