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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를 찾아라
나는 3의 법칙을 따르는 편이다. 한 번에 처리를 하면 3개 이상씩 묶어서 처리를 하고, 중복이 발견되면 3개 이상부터 중복에 대한 처리를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실수를 3번 이상하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그 원인을 병적으로 찾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3번이 되면 속으로 화가 날 정도이고, 실수의 경우 1번으로 끝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비슷하게 같은 표현을 3번 들으면 나는 뭔가 패턴이 있나 생각한다. 1탄: 임동혁 출처: https://youtu.be/NZJI_Q6rIns?t=917 제일 처음은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의 또모에 출현해서 이야기한 내용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팁을 달라는 요청에, 불이 완전하게 깜깜하게 꺼진 방에서 연주해본다고 한다. 칠흑같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에서 무대와 비슷..
The Purpose of Nonviolent Communication & Expressing Observations and Feelings 비폭력대화의 목적(The Purpose of Nonviolent Communicatio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기. 왜냐하면 가끔 이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잊어버리도록 교육을 받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가슴에서 우러나서 자연스럽게 줄 수 있도록 연결되는 것 (connect in a way) 가슴에서 우러나서 주는 것: 게임: "삶을 멋진 것으로 만들기(making life wonderful)" vs "누가 옳은가?(who's right?)" "누가 옳은가?" 게임 "누가 옳은가?" 게임은 모두가 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 질문을 통해서 배웠다. 질문과 성취도 심지어 대학생 때 내가 만든 이론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그 학기에서 내가 교수님한테 질문을 10회 이상 한 수업은 학점이 A 이상이 나온다." 엉뚱한 질문조차도 뭔가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행동을 한 수업은 결과적으로는 내 성취도(꼭 학점은 아니더라도)에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궁금증과 호기심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엉뚱한 질문을 하려고 해도 뭔가를 알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 길잡이 학원 중고등학교 시절에 길잡이 학원이라는 곳에 다녔다. 고등학생 때는 정규 과정보다는 단과 수업을 들었는데 지구과학 중 지질학에 대해 강사에게 물..
오늘은 2021년 4월 15일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년 6월 21일 ~ 1980년 4월 15일)의 사망일이기도 하다. 아침 독서를 위해 밀리의 서재 앱을 펼쳤는데 오늘의 책으로 마틸드 라마디에의 장폴 사르트르라는 책이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어 있었다. Michele 이란 이름을 쓰는 분이 에디터(?)로 생각되었는데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인용구를 적어놓았다. 저 인용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 오늘이 사르트르의 사망일이구나.' 정도 생각하거나, '사르트르가 저런 이야기를 했구나'라고 의식이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을 과연 사르트르가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알기..
애자일 관련 공부를 하다보면 인셉션 덱(inception deck)이라는 활동이 나온다. 이 활동에 처음 나오는 그림은 바로 아래와 같다. 어떤 사항(then)에 대해 - 회의나, 대화나 채팅 등 어떤 수단을 통해 - 모두 동의를 했지만 그 대상이 일치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오늘 출근을 했는데 어떤 JIRA 티켓에 댓글로 티켓을 만들고 어떤 기능을 만들고 있는 담당자가 "PR 중" 이라고 적혀있었다. PR(Pull Request)는 본인이 만든 것을 팀의 다른 사람에게 리뷰를 요청을 하는 행동을 줄여 말한다. 작업이 소프트웨어 개발이기에 '코드리뷰'라는 이름과 같은 말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이 댓글을 보고 처음 든 느낌은 의아함이었다. 왜냐만 PR을 할 대상이 나였고, 나는 저 PR이 나에게 온 사실..
요즘 일부러 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좋다"라는 말이다. 왜 안쓰게 되었는지는 육아에서 칭찬이 아이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알게되었던 것이 계기이다. 칭찬의 내용과 대상과 관계없이 "좋다"라는 표현은 어떤 사항을 "평가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에게 "너 머리가 참 좋다."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보다 높다라는 이야기이다. 즉 기대하는 바와 그 결과에 대한 평가의 말이다. 어떤 기준보다 높다라는 것은 반대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나쁘다"라는 말이다. 오늘 "좋다"라고 들었던 말과 내가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서 나타낸 것을 통해 어떤 느낌과 결과를 가져왔는지 적어본다. 사례1. 어제 회고를 진행 했는데, 회고에 대한..